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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암호화폐 업계의 유명 인사들(하)

관리자
  • 2020.05.07 08: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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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32

에임리치 암호화폐 투자정보 가이드

본 보고서에 기재된 정보들은 모두 작성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작성일 이후의 이슈에 대해서도 체크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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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업계에는 많은 사람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순위나 중요도를 따지는 것보다, 업계가 나아가는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 하나하나의 의견을 편견 없이 참고해서 시장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과 통찰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럼 지난주에 이어서 암호화폐 업계의 주요 인사들의 성장 배경, 그들의 생각 또는 이들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① 팀 드레이퍼 (Tim Draper, 드레이퍼 어소시에이츠 창업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이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털인 드레이퍼 어소시에이츠(Draper Associates)의 창업자입니다.

드레이퍼는 195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특이하게도 그의 집안은 3대째 벤처 캐피털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드레이퍼는 실리콘밸리 최초의 벤처 캐피털(VC) 회사를 세웠고, 아버지 윌리엄 드레이퍼 3세도 벤처 캐피털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 뒤를 이어 드레이퍼도 1985년 공동 설립자 3명의 이름을 딴 DFJ(Draper+Fisher+Juvetson) 캐피털을 설립하고 이 회사의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1980년 스탠퍼드 대학교를 나와, 1984년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드레이퍼는 알렉스 은행과 브라운엔 선즈(Brown & Sons)에서 경험을 쌓은 후 자신만의 캐피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 같은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2014년 2월 전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 곡스(Mt.Gox) 해킹 사건입니다. 이때 그는 기존 6달러에 샀던 약 85만 개의 비트코인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2014년 7월 CIA에서 그동안 압수한 비트코인 3만 개를 경매 물품으로 내놓자 당시 시세보다도 비싼 632달러에 전량 낙찰을 받았습니다. 6달러에 샀던 비트코인을 다 날리고도 632달러에 다시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2017년 11월 비트코인은 1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팀 드레이퍼는 비트코인 투자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을 단순히 투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팀 드레이퍼에게 가진 재산 전부를 주식, 금, 달러, 비트코인 중 한 가지만 선택해서 투자하라고 한다면 100% 비트코인이라 대답할 정도로 그는 암호화폐의 장래를 밝게 보고 있습니다.

팀 드레이퍼는 지난 4월 27일 열린 ‘가상 블록체인 위크'(Virtual Blockchain Week)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25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이미 2018년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2022년 말이나 2023년 초까지 25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습니다. 팀 드레이퍼는 가격 상승 이유에 대해 “미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많은 사람을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만약 비트코인 가격이 2023년 초까지 25만 달러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날계란을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날계란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2011년 날계란에서 발생하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한 이후 날계란을 먹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상황은 같으므로 우리도 주의해야겠지요.

 

② 우지한(Wu Jihan, 비트메인 공동 창업자)

우지한은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채굴기 생산 업체이자 채굴업체인 비트메인(Bitmain)에서 잔커퇀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베이징대학 졸업 후,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금융 전문가였던 그는 2011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비트코인 백서를 읽고 중국 최초로 중국어로 번역을 하면서 비트코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는 이 시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10만 위안(약 1,700만 원)을 모두 투자해서 약 2만 개의 비트코인을 한 개에 1달러로 매입했고 이것이 2013년 말에는 약 100만 원으로 폭등해 불과 2년 사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지한은 여기서 확보한 자금으로 지인과 함께 8btc.com이라는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2012년 채굴기 업체인 에이식마이너 회사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2013년 중국과학기술대학 출신 반도체 디자인 전문가인 잔커퇀과 함께 앤트 마이너(비트코인 채굴기 이름) 개발에 성공하면서 그의 앞에는 꽃길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은 우지한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130만 원까지 올랐던 비트코인 가격이 마운트 곡스 해킹 사건과 함께 폭락했고 채굴기 구매 고객도 사라졌습니다. 당시 대규모 채굴업체 중에서는 비트메인과 비트퓨리만 살아남았을 정도였습니다.

2015년부터 다시 비트코인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가격도 서서히 회복되었고 채굴기 수요도 살아났습니다. 비트메인은 기술 개발에 더욱 힘썼고, 채굴기 시장의 후발주자였지만 채굴기 완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채굴기 시장 점유율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2017년 기존 비트코인을 하드포크한 후 에어드랍하는 방식으로 비트코인캐시(BCH)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비트코인과 글로벌 경제의 전망에 대해 “비트코인이 과거만큼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기 어려우며, 결코 안전자산이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글로벌 경제에 대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③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 컴퓨터 공학자)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는 호주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선구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호주 브리즈번의 파듀아 가톨릭 대학교 부속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통계학, 법학, 컴퓨터 과학 석사, GIAC 보안전문가 등 다양한 학위를 취득한 컴퓨터 천재였습니다. 그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취미로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업 중독자였다고 합니다. 또한 크레이그는 오즈이메일, 케이마트, 호주증권거래소 등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보안 정보 기술 전문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크레이그는 2015년부터 중국 채굴업체와 주도하여 비트코인캐시를 하드포크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에스브이(BSV)를 만드는 블록체인 기업 엔체인(nChain)의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는 2018년 11월에 기존의 비트코인캐시를 하드포크하여 비트코인에스브이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비트코인에스브이는 비트코인 사토시 비전(Bitcoin Satoshi Vision)의 약자입니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는 비트코인 개발자이자 블록체인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업무 외적인 사건, 사고들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는 두 차례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사토시 나카모토 주장 사건인데요, 2016년 5월 그는 느닷없이 본인이 비트코인을 창시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선언했습니다. 크레이그는 친구인 컴퓨터 보안 전문가 데이브 클라이먼과 함께 비트코인(BTC)을 만들었으므로 비트코인 코드의 소유자이며, 비트코인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는 모든 사람이 이용 가능하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코드로 만들어진 MIT 라이선스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몇몇 관련자들이 크레이그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는지 검증에 들어갔고, 일부 기록이 맞는다는 점은 인정되었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2008년에 그가 블로그에 남긴 글(지금은 삭제되어 있음)인데요, 해당 글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백서를 발간하기 몇 달 전에 작성된 것이며 비트코인 문서에 대한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후 제기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여,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본인은 당당하게 자신이 새로 만든 블로그 헤더 이미지에 '비트코인 창시자-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명시해 두었습니다.

<그림1=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의 개인 블로그 헤더 이미지/출처=크레이그 라이트의 블로그>

두 번째는 2018년 2월 크레이그가 비트코인 개발진으로 추정되는 데이브 클레이만이 사망한 이후 그와 공동으로 관리하던 비트코인을 빼돌린 혐의를 받은 사건입니다. 크레이그와 클레이만은 2011년 사이버 보안 업체를 설립하고 함께 비트코인 개발과 채굴을 해왔는데 데이브 클레이만이 사망할 당시 두 사람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비트코인은 110만 개로 현재 약 1조 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당시 클레이만의 가족들은 라이트가 비트코인을 빼돌리기 위해 계약을 변경하고 서명을 위조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쨌거나 암호화폐 업계의 유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크레이그에 대한 평가는 '44명'이라는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숫자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크레이그의 거취에 따라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요동치기도 하니까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④ 찰리 리(Charlie Lee, 라이트코인 창시자)

찰리 리는 라이트코인의 창시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미국 MIT를 졸업한 사업가였고, 미국을 거쳐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로 이주했기 때문에 찰리 리는 그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13세에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같은 업계의 유명인사인 그의 형 바비 리(Bobby Lee)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티씨씨(BTCC)를 창업했습니다.

찰리 리는 2007년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포털 회사인 구글에 입사했습니다. 그는 구글에서 6년간 근무하면서, 구글 크롬 OS, 구글플레이 게임 플랫폼, 유튜브 모바일 등의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찰리 리는 구글에서 근무하던 중 2011년 초 우연히 실크로드(Silkroad) 사이트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알게 되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비트코인이 표방하는 '익명성'이라는 이념과 오픈 소스 기반의 암호화 기술에 매료되었습니다. 찰리 리는 비트코인을 접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새로운 암호화폐를 창시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2011년 10월 기존 비트코인을 개량한 새로운 암호화폐인 라이트코인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라이트코인 시스템이 안정화된 2013년 7월 구글을 퇴사하고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를 거쳐 라이트코인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한편, 찰리 리는 2017년 12월 20일 암호화폐 가격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이트코인(LTC)을 모두 팔았다고 밝혀 투자자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 경제 전문 방송 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라이트코인 가격과 관련해 트위터에 글을 쓸 때마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올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고 말하면서, "라이트코인을 보유하고 그것에 대해 트위터를 하는 것은 나에게 이해 상충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AMB크립토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라이트코인으로 만든 돈 없이도 충분히 일찍 은퇴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나는 LTC에 투자하지 않았음에도 라이트코인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쳐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수의 라이트코인 보유자들은 여전히 찰리 리가 개인적 이득을 위해 가장 가격이 높은 시점에서 라이트코인을 전량 매각했다는 의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⑤ 존 맥아피 (John McAfee, McAfeeDEX.com 대표)

존 맥아피는 1945년생 영국계 미국인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입니다. 그는 1967년에 로어노크 대학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약 10년 뒤인 1987년 소프트웨어 회사인 맥아피 어소시에이츠(맥아피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서 1994년에 회사를 사임할 때까지 운영했습니다.

맥아피 어소시에이츠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인 맥아피의 개발 회사로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이 회사는 다양한 기업 보안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인텔에 의해 2011년에 매각됐으나 소프트웨어는 항상 맥아피 브랜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맥아피는 암호화폐 산업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기행으로도 유명한데요, 한때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고, 살인 혐의를 받고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맥아피는 지금까지 총 18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됐는데 2012년에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검거되기도 했고 알리바이를 주장해 석방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암호화폐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현재 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쿠바로 도피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트위터에서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보다 많은 사칭 피해를 입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암호화폐 찬성론자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비트코인 지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20년 내로 비트코인이 최대 100만 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존 맥아피는 여전히 암호화폐 세계에서 가장 인용이 많이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그의 인터뷰와 트위터 글에는 암호화폐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에게 유용한 정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지난 3월 비트코인닷컴에서 선정한 트위터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인사 35명 중 2위에 선정된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무려 1백만 명을 넘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 옹호론자였던 존 맥아피가 지난 1월 갑자기 입장을 바꿔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는 트위터를 통해 “암호화폐의 미래는 알트코인에 달려 있다”라며 “비트코인은 진정한 ‘쓰레기 코인’”이라고 밝혔습니다. 맥아피는 “비트코인은 구식이고 보안성이 낮다”며 “스마트계약과 디앱(dApp)이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⑥ 로저 버(Roger Ver, 비트코인닷컴 대표)

로저 버는 암호화폐 관련 뉴스, 환전,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트코인닷컴 및 계열사의 대표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2014년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세인트키츠네비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디엔자컬리지에 입학했지만, 학업보다는 사업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1년 다니다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2002년에는 이베이에서 농업용 폭발물을 판매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5년 일본으로 이사를 한 그는 2011년 비트코인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로 비트코인과 달러를 환전하는 비트인스턴트라는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이어 리플, 블로체인닷인포, 비트페이, 크라켄 등 비트코인 관련 12개의 스타트업에 연이어 투자했으며, 2014년에는 비트코인닷컴이라는 도메인 이름을 사서 대표가 되었습니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 예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비트코인 대중화에 큰 힘을 쓴 인물입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단시간 내에 그의 바람대로 법정화폐를 대처하지 못하면서 한때 비트코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로저 버는 비트코인캐시 전도사로 입장을 바꿉니다. 비트코인캐시는 비트코인보다 빠르고, 수수료도 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비트코인닷컴의 모든 서비스 및 결제에서 비트코인캐시를 도입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배신했다"는 의미에서 '비트코인 유다'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저 버는 암호화폐는 널리 쓰여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비트코인캐시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장에서는 로저 버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채굴업체인 비트메인과 함께 그가 대표로 있는 그룹들이 비트코인캐시 가격을 조작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로저 버는 비트코인의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소셜미디어 레딧 이용자의 불만에 대해 비트코인캐시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답한 대화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비트코인이 현재 통화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느린 처리 속도에 대한 비트코인 이용자들의 불만 때문에 자신이 비트코인캐시를 더 지지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⑦ 안토니 폼플리아노(Anthony Pompliano, 모건크릭디지털에셋 공동 창업자)

안토니 폼플리아노는 IT 인프라 서비스 솔루션 기업 아넥시오(ANEXIO)의 설립자인 토니 풀실리아노(Tony Pulsiliano)의 아들로 태어나, 카디널 기번스 고등학교(Cardinal Gibbons High School)와 벅넬대학교를 졸업하고 미 육군에서 복무하면서 이라크 전쟁까지 참전한 베테랑입니다. 그는 공동 창업자이자 관리 파트너인 제이슨 윌리엄스(Jason A. Williams)와 함께 초기 벤처캐피털 펀드인 풀틸트 캐피털(Full Tilt Capital)를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비트코인 및 암호화 생태계 전반의 기관 투자자를 대신하여 자본을 투자하는 미국의 투자 자산 관리회사 모건크릭디지털에셋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폼플리아노는 대중에게 비트코인을 알리기 위해 암호 화폐 콘퍼런스와 CNBC와 같은 방송 매체에 종종 출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하시면 그가 진행하는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podcast)와 일간 뉴스레터(daily newsletter)인 오프더체인(Off The Chain)을 제시간에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림2=5월 6일 안토니 폼플리아노가 '케이스 라보이스'와의 인터뷰 영상을 트위터로 올린 글/자료=에임리치 금융공학기술연구소>

참고로, 그림2는 당 연구소에서 개발·제공하고 있는 '업계 유명 인사 실시간 트위터 통합 메신저 서비스'의 PC 버전 화면입니다. 언론에 인용되는 유명한 인사들의 트위터 계정이 하나의 메신저로 연결되어 보는 사람은 팔로우하지 않고도 한 곳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C 버전, 모바일 버전이 모두 지원되고 알림 기능으로 트위터 글이 올라오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안토니 폼플리아노는 암호화폐 긍정론자이며, 상당히 높은 비트코인 가격 목표를 제시하는 전문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2019년 7월 2일 블록라이브티비(BloxLive.tv)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의 가장 큰 가격 상승 촉매제는 2020년 5월에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halving)이며 시간이 비트코인의 가장 큰 옹호자"라면서,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21년까지 10만 달러에 대한 현재의 70~75%의 신뢰수준이 90%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안토니 폼플리아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비트코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향후 비트코인은 글로벌 기축 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주식, 채권, 통화, 상품 등이 토큰화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폼플리아노의 예측대로 될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⑧ 톰 리(Thomas Lee, 애널리스트/펀드스트랫 공동 창업자)

톰 리는 미국의 투자 전문 업체인 펀드스트랫(Fundstrat)의 공동창업자이자 수석 애널리스트인 톰 리는 대표적인 암호화폐 낙관론자입니다. 그는 1991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재무와 회계를 전공하고 오펜하이머, 살로몬 스미스 바니를 거쳐 JP모건의 파트너를 지낸 유능한 인물입니다.

톰 리는 29년 넘게 주식 투자 자문 경험을 쌓은 뛰어난 월 스트리트의 전략가로 시장 전략, 중소기업 전략 그리고 텔레콤 서비스가 전문분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14년 JP모건을 퇴사하고 펀드스트랫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를 창업했고 이후 비트코인 가격 분석을 위한 지수(Bitcoin Mesery Index, 비트코인 고통지수)를 개발하고 비트코인 가격을 예측했는데, 특히 2017년도 연말 고점을 정확히 짚어 내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여러 차례 예측이 실패하면서 그의 예측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의 입장도 난처해졌습니다.

톰 리는 지난 2월 나스닥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다우지수보다 먼저 4만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면서 "과거 사례를 돌이켜 볼 때 비트코인이 200일 이동평균(MA)을 넘어선 후 6개월 내 수익률이 평균 190% 이상 증가했다. 비트코인이 아주 이른 시일 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최근 비트코인의 거래 활동이 페이팔(PayPal)의 두 배나 되고, 저렴한 수수료와 안정성 때문에 가장 강력한 비트코인 가격 예측(25만 달러 또는 50만 달러)이 장기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정확한 시점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목표가격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적어도 장기간 분석가로서 활동했던 그의 날카로운 안목은 충분히 투자자가 참고할만할 것입니다.

 

⑨ 닉 재보(Nick Szabo, 비트 골드 창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