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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암호화폐 업계의 유명 인사들(상)

관리자
  • 2020.04.30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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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46

에임리치 암호화폐 투자정보 가이드

본 보고서에 기재된 정보들은 모두 작성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작성일 이후의 이슈에 대해서도 체크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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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유명인사 35명의 순위/자료=비트코인닷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은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람의 결정과 이를 지지하는 일반인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암호화폐 시장이 미성숙 단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명 인사 대부분이 시장 초기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속칭 '고래'에 해당하기에 이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큽니다.

현재 암호화폐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과거에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트위터와 같은 실시간 SNS 데이터가 있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답변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명 인사 중에는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거나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영향력이나 유명세라는 것이 분야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점은 언론 노출 횟수나 몇 개의 기관들이 조사한 명단 등을 종합해서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배열순서는 인물의 중요도와 관계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①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세계 최초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만든 사람이며,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2008년 11월 1일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9쪽짜리 논문을 작성하고 (https://bitcoin.org/bitcoin.pdf)에 올렸습니다. 이는 자신의 제안을 구현한 최초의 블록체인 관리 프로그램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 주소를 수백 명의 암호학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 메일에는 ‘저는 제3자의 신용보증인이 필요 없는 완전한 개인 대 개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 개발을 해왔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비트코인 백서 링크를 첨부했습니다. 이 논문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기본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트코인 코어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생성하고 비트코인 거래를 블록체인 형태로 기록하도록 설계됐습니다. 블록체인 기록을 검증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 바로 새로 생성된 비트코인이지요.

사토시의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표현하면, なかもと さとし(나카모토 사토시)로서 일본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름인데, 본명이 아니라 가명으로 추정됩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국적, 성별, 나이, 단일 인물 유무, 사망 여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서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토시가 공식적으로 남긴 흔적에서 발견된 언어는 일본어가 아닌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르 브라우저 등을 이용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파악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까지 밝혀진 사실은 사토시가 피투피(P2P) 재단 웹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인 생년월일 1975년 4월 5일, 일본 거주가 전부인데, 이것도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몇 사람의 가능성있는 인물을 추정했지만 정확히 누구라고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4월 29일 기준으로 사토시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볼까요? 암호화폐 트레이딩 정보공유 사이트 코인딜리전트(coindiligent.com)에 따르면, 사토시가 2009년 초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지갑에서는 2020년 1월 31일 기준으로 98만 개의 비트코인이 채굴되어 쌓여 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갑을 빠져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비트코인은 하드포크를 통해 비트코인캐시(BCH), 비트코인에스브이(BSV), 비트코인골드(BTG) 등으로 1:1 분할되었기 때문에 같은 날짜를 기준으로 해당 코인들의 수량도 모두 98만 개씩입니다. 그동안 이 코인들의 가치도 모두 올랐습니다. 이 코인들을 4월 27일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 법정화폐가격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트코인: 980,000 BTC(1BTC = 7,737.62달러) = 7,582,867,600달러

비트코인캐시: 980,000 BCH(1BCH = 246.37달러) = 241,442,600달러

비트코인에스브이: 980,000 BSV(1BSV = 196.17달러) = 192,246,600달러

비트코인골드: 980,000 BTG(1BTG = 9.49달러) = 9,300,200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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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8,025,857,000달러(원화 9,883,361,344,080원)

<그림=2020년 4월 27일 기준 포브스 부자순위/자료=포브스>

사토시의 재산은 2020년 4월 27일 기준으로 약 80억 달러(약 9조 8천억 원)를 넘어 세계 200위 부자입니다. 전문가들의 전망처럼 앞으로 비트코인이 많이 오르면 사토시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과 같다면 앞으로도 사토시는 지갑에서 한 푼도 쓰지 않을 테니까요.

 

②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이더리움 창시자)

1994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비탈릭은 컴퓨터 과학자인 아버지 드미트리 부테린과 어머니 나탈리아 아멜린 사이에서 태어나 6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이민을 갔습니다. 그는 10살 때부터 수학, 프로그래밍, 경제학 등에 재능을 보였으며, 3학년에는 영재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코딩을 독학하고, 러시아어·중국어·영어 등 5개 국어 구사하는 등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게임을 좋아했던 비탈릭은 어느 날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그가 아끼던 캐릭터의 기능을 없애버리자 중앙집권적인 서비스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1년 2월, 아버지로부터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듣게 된 그는 비트코인에 매력을 느끼고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으로 컴퓨터 공학과 진학 및 암호화폐 관련 개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2014년 비탈릭은 다니던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를 중퇴하고, 찰스 호스킨슨(Charles Hoskinson), 미하이 알리지에, 안토니 디 이오리오(Anthony Di Iorio) 등과 함께 이더리움 재단(Ethereum Foundation)을 공동 설립하고 개발자 개빈 우드(Gavin Wood)와 조셉 루빈(Joseph Lubin)을 영입했습니다. 이더리움 재단은 이더리움 플랫폼 개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방식인 ICO를 진행하여, 약 3만 비트코인을 모았는데 이는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큰 투자금액이었으며, 2014년 이전에 진행된 모든 ICO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었습니다. ICO로 막대한 투자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하여, 이더리움 개발 프로젝트는 재무적으로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비탈릭 부테린은 암호화폐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그는 이더리움 개발과 암호화폐 산업 혁신에 힘쓰고 있습니다.

 

③ 저스틴 선(Justin Sun, 트론 창시자)

1990년생인 저스틴 선은 베이징대학 역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의 아이비리그인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입니다. 이와 같이 저스틴 선은 흠결 없는 '모범생'으로만 보이지만 베이징대학 학창 시절부터 대담하고 솔직한 발언으로 중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유명인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베이징대 역사학과 재학시 ‘학교 내 민주주의’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정치적으로 과격사상을 가진 학생들을 관리하는 베이징대 학교 내 제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써 중국 전역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학기간에도 저스틴 선은 학비와 생활비를 투자에 이용했는데 처음에는 테슬라(tesla)에 투자해 4배의 수익을 거뒀고 또 비트코인에 투자하여 20배 이상의 수익을 냈습니다. 졸업 후 한동안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기업에서 근무한 그는 귀국 후 블록체인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이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아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중국 내 은행과 고위층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4년 저스틴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가상화폐 업체 리플랩스(Ripple Labs)의 중화권 시장을 담당하는 수석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현재는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 16위 콘텐츠 거래용 암호화폐인 트론(TRX)의 창립자입니다. 리플랩스에서의 경험은 저스틴 선이 추후 트론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의 54억짜리 자선 식사 스케줄을 잡은 것으로도 유명한 저스틴 선은 나이는 젊지만 암호화폐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지난 2월 23일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오랜 기간에 걸쳐 암호화폐에 대한 신봉자였으며 비트코인 말고도 이더리움(ETH)과 리플(XRP)에도 상당한 정도의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 나는 비트코인이 2025년에 10만 달러를 넘어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2025년 전에 이 가격대에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그와 동시에 나는 트론, 이더리움, XRP 등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들도 호황기를 맞이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앞으로 대중과 함께 암호화폐 산업에 대해 신뢰와 수용 수준을 한층 높게 이끌어 갈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④ 창펑 자오(Changpeng Zhao, 바이낸스 대표)

창펑 자오는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대표이사 겸 바이낸스코인의 창시자입니다.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었습니다. 창펑 자오는 캐나다 국적의 중국 화교입니다. 그는 중국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중국에서 추방되면서 캐나다에 이민을 갔으며, 성인이 되어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0대 시절,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는 전문 대학을 졸업 후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명석한 두뇌와 성실한 자세로 그는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선물 거래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블룸버그 트레이드북(Bloomberg Tradebook)으로 이직하였습니다. 이후 높은 체결 강도 거래 시스템인 퓨전 시스템(Fusion Systems)을 설립하였으며, OKCoin의 CTO로도 근무하였습니다.

창펑 자오는 2014년 상하이에 있는 집을 팔아 비트코인에 투자했고, 2017년 중국 홍콩에 바이낸스를 설립하여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로 성장시켰습니다. 2018년 중국 후룬연구원이 선정한 중국 블록체인 업계 부자 3위에 선정되었습니다. 2018년 1월 19일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암호화폐 부자 순위 3위(관련 기사 참조)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월 중국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후룬 글로벌 부호 리스트(Hurun Global Rich List)'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6억 달러(약 3조1600억 원)로 블록체인 업계 자산 규모 1위입니다.

며칠 전 그가 크립토 독이라는 트위터 아이디로 유명한 암호화폐 분석가가 자신의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비트코인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는 설문조사에 참여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그의 답변은 “집도, 차도, 배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골프를 치지 않고, 법정화폐를 사용하는 것을 피한다”며 “새로운 직업을 얻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⑤ 윙클보스 형제(Winklevoss Brothers, 제미니 공동 창업자)

카메론 윙클보스(Cameron Winklevoss)와 타일러 윙클보스(Tyler Winklevoss)는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제미니(Gemini)의 공동 창업자 겸 암호화폐인 제미니달러의 창시자입니다. 이들 형제도 무척 똑똑한 편이어서 13세에 스스로 공부해서 웹사이트를 만들 줄 알았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이들은 하버드 대학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 대학의 사람들까지도 서로 교류 할 수 있기를 원해서 HarvardConnection 네트워크를 고안하고 2004년 네트워크 커뮤니티 사이트인 ‘커넥트유(ConnectU)'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것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대표와 법정 분쟁의 빌미가 되었는데, 주커버그가 이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 형제는 재판에서 승소했고, 6천5백만 달러를 받은 이들 형제는 받은 돈 중 일부로 비트코인을 구매했습니다. 2012년 당시 비트코인은 개당 6달러 수준이었고 1,100만 달러를 매집했는데, 이는 현재 비트코인 전체 유통량의 약 1%에 달하는 엄청난 수량입니다.

이후 이들은 뉴욕 재무부의 정식 인가를 받아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를 설립했습니다. 제미니는 ‘법률준수’라는 핵심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뉴욕주 금융당국의 규제뿐만 아니라 은행 규제 준수 표준까지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 통화로 규정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와 사용자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고,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미니 달러(Gemini dollar)를 출시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생태계에 급락과 함께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타일러 윙클보스는 낙관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의 중요성이 현재 부정적인 정서를 능가할 것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비트코인은 2008년 금융위기에 태어났습니다. 이미 그동안 많은 것을 견뎌냈으며,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번 재난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질 것이며 이겨낼 수 있으며, 10년이 넘는 시간을 단 며칠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윙클보스 형제는 여러 차례의 배짱 있는 투자와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암호화폐 산업에서 존경할 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⑥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rmstrong, 코인베이스 대표)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에서 컴퓨터 과학 학사, 경제 학사,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이비엠(IBM)과 딜로이트(Deloitte)에서 컨설턴트 및 개발자로 근무했습니다. 암스트롱은 2011년부터 에어비엔비(Airbnb)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글로벌 결제 시스템에 대한 시야를 넓혔습니다.

그는 2012년 6월에 코인베이스를 공동 설립했으며, 이후 미국의 많은 부분을 암호화에까지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암스트롱은 안드레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IVP, USV, DFJ 및 NYSE와 같은 주요 투자자들로부터 2억 달러 이상을 유치하며 현재 200 명이 넘는 직원을 이끌면서 32개국 1천만 명 이상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는 이제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의 대표로서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지난 4월 8일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선정한 15명의 최연소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 37세인 그의 재산은 약 1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⑦ 조셉 루빈(Joseph Lubin,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컨센시스 회장)

조셉 루빈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고 이후로도 소프트웨어 기술자 및 연구 과학자로 꾸준히 일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로 이직하면서부터는 완벽한 '금융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랬던 그가 다시 IT분야로 복귀하게 된 원인은 비탈릭 부테린의 이더리움 사업계획서 때문이었습니다.

2013년 11월에 이더리움 사업계획서를 접한 루빈은 이더리움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들이 만들어지며 이것은 거대한 사업 기회가 되고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루빈은 현재 "인터넷으로 인해 개인정보 시스템이 망가졌다"라면서, "블록체인을 통해 스스로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조셉 루빈은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컨센시스를 설립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골드만삭스 테크놀로지 부문 부사장을 역임했습니다. 2013년 11월 비탈릭 부테린 등과 함께 이더리움을 공동 설립했고, 2015년 코인의 생태계를 제공하는 컨센시스(ConsenSys)를 설립하여 블록체인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루빈은 컨센시스의 지배주주로서, 보안 감사, 컨설팅, 토큰 출시 등 업무 총괄하고 있습니다.

조셉 루빈은 2018년을 '암호화폐 바닥의 해'라면서 FUD(Fear, Uncertainty, Doubt, 공포, 불확실성, 의심)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2019년은 블록체인의 태동기이며 다시 암호화폐가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이고 10~20년 안에는 블록체인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10배 더 커질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더리움 2.0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이더리움이 훨씬 더 확장성이 뛰어나고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⑧ 안토니 디 이오리오(Anthony Di Iorio,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암호화폐 지갑 잭스 대표)

안토니 디 이오리오는 이더리움의 공동 창업자이자 암호화폐 지갑 잭스(Jaxx)의 창업자입니다. 안토니 디 이오리오는 암호화 커뮤니티의 저명한 인물 중 하나이며 적극적인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 분야의 커뮤니티 관리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안토니 디 이오리오는 매우 바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으며,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성공적인 신생 기업, 조직 및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의 공동설립자이자 억만장자로 유명한 안토니 디 이오리오는 암호화폐에 대해 낙관적이며 특히 비체인(VeChain)과 큐텀(Qtum, 퀀텀)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암호화폐가 성장할 것이며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보다 더 위대하고 그 어떤 것도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또한, 안토니는 일전에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비체인과 큐텀과 같은 프로젝트를 포함한 차기 암호화폐 승자들의 본거지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은 비체인과 큐텀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더리움과 같은 일부 특정 네트워크는 자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야 해서 개발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는데 중요한 장벽이 되고 있는데, 파이썬, Go, C++ 등과 같은 보편화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할 수 있다면, 많은 개발자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사업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현재 큐텀(Qtum)과 비체인(Vechain), 지캐시(Zcash)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안토니는 약 7억 5,000만 달러 ~ 10억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⑨ 찰스 호스킨슨(Charles Hoskinson, 이더리움 공동 설립자/카르다노 공동 창시자)

찰스 호스킨슨은 이더리움의 공동 설립자이자 차세대 이더리움으로 불리는 카르다노(Cardano, 에이다라고도 함)의 공동 창시자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출신인 찰스 호스킨슨은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실은 1987년생으로 젋은 편입니다. 할아버지가 의사이고, 아버지는 물리학자로, 어릴 때는 외과 의사가 꿈이었지만 수학에 관심을 가졌던 호스킨슨은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메트로폴리탄 주립대학교에 진학했고 비트코인과 암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비트코인 교육을 위한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서 2013년 5월 비트코인 교육 프로젝트(Bitcoin Education Project)와 비트코인 재단(Bitcoin Foundation) 교육위원회를 공동 설립해 많은 이들에게 암호화폐를 설파했습니다. '우데미'(UDEMY)라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 올린 무료 비트코인 강의 수강생이 8만 명을 넘은 것은 아직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온라인 강의가 큰 인기를 끌자, 전 세계에서 수천 개가 넘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그중에서 중국의 투자자인 리 샤오라이(Li Xiaolai)가 암호화폐 관련 회사를 설립하라면서, 50만 달러(약 6억 원)의 투자 자금을 건네주었고, 비트코인 토크(Bitcoin Talk, 온라인 포럼)를 만들어 암호화폐 거래소의 안정성 문제에 대한 질문을 올렸는데, 그 질문에 가장 처음 답변한 사람인 댄 라리머와 함께 2013년 7월 회사를 공동 창업하고 비트셰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해말 비탈릭 부테린이 만든 이더리움 재단의 대표도 역임했습니다. 이어 2015년 3월 제러미 우드(Jeremy Wood)와 함께 홍콩에 IOHK 회사를 설립하고, 카르다노 플랫폼 기반의 에이다(ADA)를 개발했습니다.

한편,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더리움 개발 동향이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 개인에게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이더리움 개발이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는 비탈릭 부테린에게 있다.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의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5~10년은 족히 걸릴 기능과 요소들이 올해, 혹은 내년에 구현될 것처럼 얘기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더리움 2.0 개발에 작업증명(PoW) 알고리즘을 버리고 지분증명(PoS) 방식을 채택하려는 시도 역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호스킨슨은 "개인적으로 비탈릭 부테린을 존경한다. 그는 천재 개발자다. 그의 직업윤리와 무결성, 이더리움과 생태계에 대한 그의 신념과 의지에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⑩ 마이클 노보그라츠(Michael Novogratz, 갤럭시디지털 대표)

톰 리(Tom Lee)와 함께 암호화폐 시장의 대표적인 낙관론자로 통하는 마이클 노보그라츠는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산업을 전담하는 산업은행인 갤럭시디지털(Galaxy Digital)의 창업자 겸 대표이사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포트 헌트 고등학교(Fort Hunt High School)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 준우승 및 대학 진학 후에도 전국대학 체육 협회(NCAA)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합격하는 등 레슬링 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골드만삭스, 포트리스 투자 그룹에서 근무했고, 퇴사 후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2017년 갤럭시디지털(Galaxy Digital)를 설립했습니다.

갤럭시디지털은 암호화폐 담보대출 서비스업체인 블록파이(BlockFi)의 매출과 고객 수가 급증한 것을 근거로 암호화폐 대출 사업의 전망을 밝을 것이라 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갤럭시디지털은 암호화폐 시장 침체기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노보그라츠는 그의 투자은행 이력 덕분에 여러 유력 경제 방송 매체에서 단골로 초빙하는 유명 인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최근 미 경제 TV CN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예정된 비트코인의 반감기와 세계적인 양적 완화 조치로 인해 비트코인은 빛을 발할 것”이라면서 다음 달 반감기를 앞둔 비트코인에 대해 긍정론을 펼쳤습니다. 노보그라츠는 “비트코인이 반감기로 채굴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면서 “이번 주 미국에서 큰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통과된 이후 투자자들은 희소성있는 암호화폐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⑪ 크리스 라슨(Chris Larsen, 리플 창시자)